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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1_해고사건 노동위원회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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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199회 작성일 21-06-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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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거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노동위원회다. 노동위원회는 이밖에도 쟁의조정, 차별시정,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절차 관련 이의신청등을 맡아한다. 노동위원회는 법원으로 가기 전 분쟁을 간이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둔 절차이다.

해고나 징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위원회 체험은 그다시 기분좋은 경험이 아니다. 노동위원회에 이런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행위를 구제신청이라 한다. 일단 해고나 징계, 부당한 전보를 당했거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조합 활동에서 불이익을 받았거나 사용자의 행위로 노동조합의 권리가 침해된 자들이 구제신청을 하기 때문에 구제신청을 하는 당사자의 상황은 매우 절박하다.

구제신청을 하면 관할 노동위원회 조사관의 조사를 거쳐 2개월 이내에 심문회의를 하고 심판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해야한다. 구제신청을 하면 심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각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서면 혹은 증거자료를 제출하여야 한다.

며칠전에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방문간호사 해고자 3명에 대한 심문회의가 있었다. 심문회의 과정을 살펴본다.

시간이 되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심판정으로 들어간다. 보통 노동자측은 왼쪽, 사용자측은 오른쪽에 배치된 자리에 앉는다. 곧이어 공익위원,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공익위원은 모두 3사람이고 노동위원회법에 정한 절차와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 위촉된다. 노동자 위원은 연맹단위에서 추천하고 사용자 위원은 사용자 단체가 추천한다. 심판정은 법원의 재판정처럼 공익위원,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이 약간 높이가 있는 단위에 자리한다. 공익위원 3명, 근로자윙원, 사용자 위원 모두 5명이 앞에 앉는다. 신청한 노동자와 노동조합, 그리고 사용자가 양쪽으로 나누어 앉는다. 옆으로 조사관이 배석한다.

공익위원중 가운데에 자리한 사람이 의장이 된다. 의장이 노동자와 사용자측 출석자들을 확인한다. 그리고 조사관에게 사건요지를 읽게한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근로자위원부터 심문을 하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노동위원회는 공익위원들이 먼저 심문하고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순으로 심문한다.

위원들은 각각 자신이 묻고 싶은 것을 묻는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긴장된 상태인데다 위원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답변하는 경우도 있다. 뭔가 부연 설명을 하려고하면 질문내용과 다르다면 말을 중도에 자른다. 기회가 와서 설명을 하려고 하면 간단히 하라고하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답변하는데 위원들이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지도 알 수 없다. 말로는 다 알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

구제신청을 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은 절박한데 심판정은 그 절박함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 위원들이 내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도록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근로자위원이 민주노총에서 위촉한 사람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결정권한이 없다. 의견만 말할수 있다.

결정권은 세사람의 공익위원에게 있다. 공익위원들은 변호사, 교수가 많다. 교수나 변호사가 노동자 사정을 얼마나 잘 알고 노동자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을까? 별 기대를 안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공익위원들의 합리성이란 사용자의 이해에 더 가까운것같다.


이번에도 위원들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궁금하다. 저 표정은 무어란 말인가?

심문회의는 보통 한 사건당 1시간씩 주어지지만 이번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사건은 해고자가 3명이고 두 개의 사건이 병합되어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심문회의 마지막에 당사자에게 최종진술을 하게 한다.

부산 방문건강관리사업 해고자인 지부장이 마지막 진술을 한다. 해고자의 설움이 절절히 전달되어 공익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편을 들어주길 간절히 기대하면서.

심문회의가 있는 당일 8시에 결정내용이 문자로 전송된다.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지고 희비가 엇갈린다. 8시가 되기 전까지 모두가 마음을 졸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운명의 주사위는 누구편을 들어줄까? 혹시나 하는 기대와 질수도 있다는 패배감이 오락가락하는 시간이다. 정말 피가 마른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경험하기 싫은 시간이다. 그래서 노동위원회 심문회의가 싫다. 매번 그렇다.

 

참담하다. 이번 사건은 모두 ‘기각’이다. 구제신청의 이유가 없다는 결정이다. 해고가 정당하다는 말이다. 구제신청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면 ‘인용’ 결정을 한다. 신청인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이기는 경우다.

‘각하’ 결정도 있다. 구제신청의 제척기간이 3개월 인데 사유 발생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각하’ 결정을 한다. 구제신청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업장이 폐업을 해서 돌아갈 곳이 없거나 기간제의 경우 심문회의 시점에 기간이 만료되어 구제실익이 없는 경우에도 ‘각하’결정을 한다.

 

‘기각’ 결정은 가장 받기 싫은 결과다. 어쨌든 결과가 나왔다. 대리인인 나는 1주일간 속이 상한다. 온갖 상념이 머리에 떠오른다. 생각하지 못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온다. 매 순간 마다 내가 잘못해 이리된 것같다. 설령 노동자들이 내게 원망을 해도 변명을 하기조차 궁색하고 낯이 뜨겁다. 부러 씩씩하게 굴기도 한다. 나는 또 내일을 해야하니까.

대리인인 나도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운명의 시계가 한번 크게 휘청하는 순간이다. 며칠간은 쓴 소주를 들이부어야 하리라.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노동위원회에 항의를 조직하는 등 수긍할수 없는 결과에 대해 나름의 항의를 할 예정이다. 그래도 결과가 뒤집어지는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항의가 필요하면 항의를 해야한다.

판정서를 받고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할 수 있지만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기각 결정이 나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번복하기 쉽지 않다. 처음이 중요하다.

노동위원회가 좀더 노동자 편에서서 결정했으면 한다. 법원 판결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동부의 지침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노동자가 믿고 찾아갈 수 있는 기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좀 덜 권위적이고 절박한 민원인인 노동자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노동위원회에 가는게 좀 좋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