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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자주평화 순례단 기행일지_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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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174회 작성일 24-04-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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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위원장 김만석) 정치통일위원회(위원장 도명화)는 지난 3월 28일(목)부터 3월 30일(토)까지 제주 4.3민중항쟁이 일어난지 76주년을 맞아 4.3 자주평화순례를 다녀왔다. 



4.3 자주평화 순례단 네번째 발자취 '큰넓궤'


자주평화 순례단의 2일차 일정이 밝았다. 

네번째 행선지는 큰넓궤였다.

1948년 11월 중순 이후 한라산 중산간 마을 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피해 동광리 주민 120여명이 50여일간 집단적으로 숨어 살았던 용암동굴이다. 

입구가 아주 좁고 은신되어 있어 토벌대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가 비록 들어가볼수는 없었지만 입구가 굉장히 험하고 안으로 가면 상당히 넓어서 숨어지낼수 있었다고 해설사님이 설명해주었다. 

40여일만에 토벌대에게 발각되고,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들어갔다.

많이 내린 눈에 생긴 발자욱으로 인해 대다수가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거나 생포되어 서귀포 정방폭포와 인근에서 학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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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주평화 순례단 다섯번째 발자취 '섯알오름 예비검속자 학살터와 알뜨르 비행장'


다섯번째 행선지는 예비검속자 학살터와 알뜨르 비행장이었다. 

현재 제주 모슬포 지역에 위치한 섯알오름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만든 탄약고가 있었다. 이곳을 1945년 해방이후 미군이 폭파해 큰 웅덩이 두개가 남았다. 

1950년 6.25 전쟁이 나자 정부는 북한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며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제주 4.3에 연루된 사람들과 주민들을 검거해 수용하고 있었다. 

6.25전쟁시 한국군이 낙동강까지 밀리자 예비검속되었던 250명을 이곳으로 끌고왔고 끌려오던 사람들은 식구들이 시신이라도 찾을수 있도록 신고 있던 고무신을 던져 이동길을 알리려 했다. 결국 끌려온 모든 예비검속자들은 무참히 학살당했고, 군인들은 길을 알리려 던졌던 소지품들마저 모조리 불태워 흔적을 지우려했다. 

1956년 3월 19일 새벽 한림지역 유가족들이 61구를 수습해 만뱅디 묘역에 안장했고, 1956년 5월 18일 남은 유가족들이 당국의 허락을 받아 시신을 수습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형체를 알수 없는 유해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고, 신원 확인을 한 17구를 제외한 132구는 서로 다른 132명의 조상이 한날 한시에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으니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의 '백조일손지묘'에 안장되었다. 

끔찍한 학살의 진상은 군사정권시절에 묘지와 위령비마저 파괴되고, 2007년에 학살터가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아직도 못 찾은 40구의 유해가  인근에 매장되어 있다고 했다. 

역사의 처참한 학살을 간직한 웅덩이 주변에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봄을 알리는 유채꽃이 만발해 더욱 슬픔을 자아냈다.


이어 바로 근처에 알뜨르 비행장, 비행기 격납고, 관제탑, 지하벙커를 들러보았다.

제주말로 알뜨르는 아래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란 뜻이다. 

1920년부터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징용해 건설한 비행장이었고, 1937년 중일전쟁 때 중국 폭격을 위해 일제가 더욱 확장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 곳곳에 뱅기 격납고를 만들고 은신하기 위해 풀과 잔디를 심어놓았다. 1945년까지 격납고가 38개가 지어졌고 현재까지 19개가 온전히 남아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본의 가미카제 작전에 투입된 전투기가 이곳에서 출격했다. 현재로는 평화로운 들판 위에 을씨년하게 서있는 격납고가 제주도민의 고통과 역사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다시금 마주하며 우리의 결의를 일본군 모형 비행기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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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주평화 순례단 여섯번째 발자취 '진아영 할머니 삶터'


여섯번째 행선지는 진아영 할머니 삶터였다. 

흔히 무명천 할머니라고 불리는 진아영 할머니는 1949년 1월 12일 제주 한경면 판포리에서 토벌대의 총격으로 아래턱을 잃었다.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혼자가 되어 현재 삶터로 혼자 사시게 되었다. 아래턱이 없어져 평생을 무명천으로 가리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소화불량, 관절염 등 후유장애를 앓다 2004년 9월 8일 향년 90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4.3 당시 학살당한 억울한 죽음도 많았지만, 피해 장애를 입고 한생을 억울하게 살다가신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한 사람, 한 가족, 한 마을, 한 사회를 파괴한 4.3의 역사가 진아영 할머니길에서 더욱 서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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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주평화 순례단 일곱번째 발자취 '4.3 민중항쟁 정신계승 노동자 반전평화대회'


일곱번째 행선지는 제주 북수구 광장이었다. 

이곳에서는 민주노총 주최로 4.3 민중항쟁 정신계승 노동자 반전평화대회가 열렸다. 

올해가 처음 준비한 반전평화대회로 야간문화제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노동조합에서 준비해간 현수막을 들고 풍물패의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들고 핸드폰 불빛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4.3의 배후에 있는 미국놈들에게 경고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더욱 결연히 투쟁했다. 아직도 4.3은 자기의 이름을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이니 범국민적 제주 4.3 정명운동을 벌이자는 연사의 발언이 가슴에 남았다. 4.3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제대로 된 책임자 확인 및 처벌을 만들고 아픈 제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보듬어주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로서 2일차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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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주평화 순례단 여덟번째 발자취 '4.3 민중항쟁 76주년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여덟번째 행선지는 제주시청이었다.

이곳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4.3민중항쟁 76주년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우리는 전국에서 모인 동지들과 함께 민주노총의 깃발 아래 4.3 민중항쟁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윤석열 퇴진투쟁에 한뜻을 모았다. 

우리 노동조합 호남본부 참가단과 함께 투쟁해 더욱 많은 대오가 민주연합 깃발아래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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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주평화 순례단 아홉번째 발자취 '주정공장 수용소'


아홉번째 행선지는 주정공장 수용소였다. 

노동자대회를 마치고 투쟁 대오는 관덕정으로 행진을 하는 동안 우리 순례단은 주정공장을 방문했다. 

주정공장은 일제시대 동양척식회사가 직접 운영한 전투기 기름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1943년 준공되어 1970년대말까지 가동된 제주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산업시설이었다. 

제주도민의 등골을 빼먹던 공장이 4.3 당시에는 가장 큰 수용소가 되었다. 

4.3 당시 한라산 등지로 피난했던 피난민들이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말을 듣고 내려왔다가 주정공장 고구마 창고에 수용되었다. 

수용자 중 일부는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이송되어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이 벌어진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총살당했다. 

전쟁이후 예비 검속자들이 다시 끌려와 감금되었다. 수용되어 있던 예비검속자들은 정뜨르 비행장에서 총살당해 암매장되거나 돌에 묶인채 제주 앞바다에 던져져 희생되었다. 

수형자들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며 당시의 절망감과 무력감이 한층 느껴져 비통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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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주평화 순례단 열번째 발자취 '관덕정'


마지막 열번째 행선지는 관덕정이었다. 

행진을 하고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는 노동자대회 참가자들과 다시 만나서 마무리를 함께 했다. 관덕정은 애초 1948년 세종 30년에 군사훈련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서 1947년 3.1절 기념식 과정에서 경찰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다쳤는데 그냥 가자 이를 항의한 제주도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하며 6명이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초유의 3.10 민관총파업이 벌어지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서북청년단과 응원경찰이 제주로 급파되고 제주를 빨갱이 섬이라 규정하며 4.3의 가슴아픈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시작의 자리에서 마지막을 고하며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바래고 결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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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 자주평화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제주 곳곳을 만나고 역사를 들춰보며 아름답기만 한줄 알았던 제주 곳곳이 피의 역사, 아픔의 역사라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기록하자! 잊지말자!  

4.3 영령들의 넋을 추모하며 새로운 세상을 안아오길 간절히 소망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