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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김혜진의 세상 속 노동조합, 노동조합 속 세상 : 장애인조합원과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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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419회 작성일 21-06-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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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세상 속 노동조합, 노동조합 속 세상 : 장애인조합원과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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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모두의 권리이다. 그런데 건강한 성인 비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려움이 없으니, 이것이 ‘권리’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이나 아픈 사람,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어려움이 많았다. 대중교통 체계가 이런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꾸준하게 투쟁하여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자, 비장애인들도 아프거나 짐이 많을 때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우리 사회의 ‘의무’이다.


 노동권도 마찬가지이다. 헌법에 노동은 의무이자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을 통해서 자기의 삶을 지키고 사회적인 관 계를 맺는다. 장애인고용의무제도를 통해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는 하지만, 장애인들이 노동할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것처럼, 노동을 하려면 일터에서 장애인에게 맞는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편의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마치 장애인이 노동능력이 없어서 일할 수 없다거나, 장애인이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최저임금도 적용 제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이다.


 2020년 민주노총에서는 ‘장애인 조합원 실태조사’를 했다. 업무에서 편의가 제대로 제공되는지 노조활동에는 어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2019년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88만원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월평균 임금인 252만원에 비하면 매우 낮다(통계청). 그런데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장애인 조합원들은 임금에서 직접적인 차별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공공부문은 제도적으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받으려고 장애인을 많이 채용하는 소규모ㆍ저임금 사업장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노동조건이 나쁘기 때문이다. 승진 등에서는 장애인이 불리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업무를 위한 편의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장애인조합원 당사자가 적극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편의제공을 요구하면 회사가 수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은 자신이 나서서 제기하는 것이 자칫 특혜로 인식될까 저어하여 불편함을 스스로 감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을 위한 이동 통로의 개선, 장애인 화장실 설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수어통역사 배치, 장애인에게 적합한 업무배치 등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도 장애인 노동자들은 잘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구를 해도 회사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포기하기도 했다.


 개인들이 나서서 회사에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장애인 노동자가 소수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노조가 나서서 장애인에게 어떤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확인하고 이것을 단체협상 과정에서 제기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노조도 장애인조합원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단체협약안을 만들고 회사와 싸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장애인조합원을 고려한 단체협약안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있다 하더라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표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노조가 장애인조합원과 함께 싸워오지 못한 것이다.


 노조 활동에서도 장애인조합원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장소나 집회장소를 장애인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정하거나, 장애인화장실을 고려하지 않거나, 집회나 교육 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사를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조합원들은 노조 활동에 자연스럽게 불참하게 된다. 물론 대다수의 장애인조합원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집회에도 참여하고 교육 등 노조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노력을 많이 기울이지만, 조합원 개인이 애쓰고 노력하기보다는 편하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노조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장애인조합원의 권리를 위해 애쓰는 노조도 있다. 어떤 사업장은 노조에 ‘인권부’를 만들어 장애인조합원 모임을 만들고 장애인조합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부서장은 장애인 당사자가 맡았다. 단체협약안에 수어통역사를 채용하도록 요구하는 사업장도 있다. 그 사업장은 청각장애인들이 위험 신호를 못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알리는 경광등을 눈높이에 맞게 설치하도록 하기도 했다. 공공부문의 한 사업장은 장애인 노동자가 별도의 직무로 채용되었다는 이유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자, 함께 싸워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


 장애인조합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모두의 권리를 위한 것이다. 한 사업장에서는 노동강도가 강한 부서에서 일하는 장애인조합원을 타부서로 전환배치하려고 하자, 조합원들이 ‘왜 그 사람만 편한 곳으로 옮기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왜 생긴 이유는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당사자만을 고려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조합원의 노동강도를 낮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부서의 인력을 충원하고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 조합원도 다른 동료들과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편히 일할 수 있도록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기업은 생산성과 능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특정 직무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떨어뜨린다. 노동자의 능력과 생산성을 임의로 규정하여 노동자를 갈라치기하는 기업에 맞서, ‘모든 노동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아래를 끌어올림으로써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조직’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장애인조합원과 함께 우리 현장을 더 안전하고 편한 곳으로 바꾸는 행동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조합원이 없는 현장이라면 기업에게 장애인의무고용을 지키라고 요구하여, 더 많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평등하게 일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끝>

 



 ** 교육선전실에서는 2021년 사업계획으로 외부 명사의 정기기고를 특별기획연재 형태로 꾸준히 게시하고자 합니다. 노동조합과 교섭, 투쟁 등 우리 얘기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의제들에 대해 사색하고 토론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