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가난의 전시와 여성혐오 - 인권감수성이 없는 정쟁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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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684회 작성일 22-11-22 16:04본문
[명숙의 인권산책] 가난의 전시와 여성혐오
인권감수성이 없는 정쟁 멈춰야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최근 국제개발협력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실이 배포한 동남아 순방 당시 김건희 여사*를 찍은 사진이 빈곤포르노라며 이를 규탄하는 온라인 서명을 받고 있다. 김 여사는 캄보디아 순방 일정 중인 11월 13일 홀로 비공개 일정으로 한국 기관이 운영하는 의료원을 찾아가 심장질환을 앓는 14세 소년의 집을 방문해 쾌유를 기원했다며 대통령실이 사진을 공개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국제개발협력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진이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유는 김여사가 찾아간 맥락이나 사진촬영구도에 빈곤층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여사에게 사진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블록처리조차 되지 않았다. 사진촬영을 위한 조명 설치 등이 의심되는데다 열네 살이나 되는 아동을 굳이 안고 찍은 것도 부자연스러우니 의심받을만하다. 구호활동을 하러 갔다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실제 순방일정 중에 캄보디아 빈민현황 파악과 그에 따른 구호활동 계획은 없었다. 구체적인 빈곤상황 파악과 지원계획이 포함된 방문도 아닌데 그가 갑자기 의료원을 방문한 것도 이상하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 설명에는 정부의 구체적인 협력계획도 없이 아동의 사연이 알려져 후원으로 이어졌다는 말뿐이니 비판받기 충분하다.
규탄서명을 조직하는 이들이 올린 바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미디어 가이드라인에는“아동을 무력한 하위 집단이 아닌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해야”하며,“미디어 노출로 인해 아동이 입을 수 있는 잠재적 위협, 사회적 낙인과 피해를 면밀히 고려”하고, “아동과 부모의 서면 동의를 받고, 질문자, 사진 기사 등의 수를 제한하여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상대가 가난하다고 인권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야 지원이 동정이 아니라 아동과 취약계층의 권리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은 빈곤아동을 주체가 아니라 무력한 존재로 보이게 구도가 잡혀졌다. 또한 병들거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나 맥락도 삭제돼 빈곤이 사회적 문제라는 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규탄서명에서 비판했듯이,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은 가난을 왜곡해 묘사하여 물신주의를 자극하고 외부의 구원자만이 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가난을 전시하는 듯한 대통령실의 사진 공개와 설명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 더구나 이것이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모으기 위한 이미지 포장으로 사용된다면 더 큰 문제다.
캠페인즈에 '공적인사적모임 및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그리고 본 캠페인에 동의하는 시민 일동'이라는 명의로 규탄서명을 모으는 내용.
3일만에 1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출처 https://campaigns.kr/campaigns/817)
가난의 전시와 여성혐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장경태 의원이 해당 사진을 빈곤포르노라고 비판하자 국민의힘 여성의원들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니세프, 세이브 더 칠드런 같은 구호 활동 단체가 포르노 단체냐”며, “대한민국 모든 여성을 비하하고 폄하하는 발언, 포르노라는 단어를 붙이는 자체가 굉장히 문제 있고 기본 상식에 어긋난다”고 했다. 이는 빈곤포르노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빈곤포르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개념으로 병들거나 가난한 사람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대상화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진과 영상을 뜻한다. 빈곤포르노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김 여사의 사진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도 언론사나 몇몇 구호단체의 홍보에 대해 비판할 때도 많이 나오는 용어다.
문제는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나 대통령의 연행에 대한 비판보다 김 여사에 대한 비판을 더 많다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순방에서 취한 태도나 성과에 대해서는 김여사의 사진만큼 귀를 세우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태원참사 현장을 처음 찾아간 대통령의 말이나 언행은 매우 문제적임에도 자세하고 끈질기게 비판하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은 현장에 가서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는 거지”라고 말하는 등 참사현장에서 희생자에 대한 애도나 경건함이 없는 말투와 태도를 취했다. 참사를 마주한 비통함은커녕 국민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지위에 있는 사람의 태도로 보기 힘들었다. 158명이나 사망한 대형참사의 현장에서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취한 태도는 심각하게 다뤄져야 마땅하지만 쑥 들어갔다. 그리고는 연일 분향소를 조문한 기사만 이어졌다.
대통령의 자질 논란이 불거질만한 태도를 취한 것은 이태원참사만이 아니었다. 지난여름, 폭우로 사망한 반지하거주자들의 사고현장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현장에서 대통령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가 아닌 구경하듯이 창문 앞에 앉아서 툭툭 말을 던졌다. 존중이나 비통함은 보이지 않았다.
왜 대통령의 피해자들에 대한 존중 없는 말과 행동에 대한 비판은 쉽게 사그라들고 배우자인 김 여사에 대한 비판은 이리 크게 오래가는 걸까. 일종의 여성혐오, 여성멸시적 시각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진행된 서명자들의 댓글에도‘조용히 내조나 해라’나 ‘천박한 여자’와 같은 성차별적 편견이 있는 말들이 눈에 띈다. 이번 빈곤포르노 논란 때도 비교대상 사진의 인물은 여성이었다. 남성들도 빈곤포르노를 많이 찍는데 굳이 여성이 찍은 사진이 대상이었다.
정부정책의 핵심을 쥐고 있는 대통령 비판보다, 복지예산 삭감이나 부동산정책, 노동정책 등 여러 가지 문제보다 더 많이 할애되고 있는 요즘이다. 김 여사의 박사논문 표절이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보다 쥴리나 의상 같은 사생활에 대한 비난빈도가 더 높다. 특히 대통령의 배우자 이전 시절에 있던 사생활을 중심으로 비판하는 것은 매우 문제다. 여성이라서 쉽게 언급하고 비판하는 것은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정치사에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도, 일부 사람들은 초헌법적인 국정운영 개입과 부정부패보다‘저잣거리 아녀자가 정치를 하니 문제’라는 식의 여성멸시적, 여성혐오적 말들을 쏟아냈다. 당시에도 시민사회는 이를 비판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을 비판해야지, 여성이라고 비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성이라서 쉽게 비판받는다면 그것은 정당한 비판이라기보다 여성멸시다. 그리고 성차별적 인식에 따른 김 여사의 언행에 몰린 시선은 윤석열 정부의 인권후퇴적, 역행적 정책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낳는다. 인권감수성이 없는 정쟁식 비판은 중단하고 제대로 된 윤석열 정부 정책비판이 이어지길 바란다.
* 덧붙임. 이 글에서 김건희 씨나 김건희 대표라고 하지 않고 여사라고 호칭을 한 이유는 그의 동남아순방은 회사의 대표 자격이 아니라 대통령의 배우자라는 지위로 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여사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호칭인 것이다. 물론 필자는 대통령의 배우자를 여사로 부르는 것이 존중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씨나 대표, 여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말에서 여사는 남편이 있는 여성을 높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달리 여성노동자 등을 부를 때 여사라고 하는 것은 성차별적인 호칭이 될 수 있다. 그가 일을 하는 것은 누구의 배우자로서 하는 것이 아님에도 여성노동자를 여사로 호칭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은 삭제된다. 그리고 그가 결혼한 여성인지, 혼자 사는 여성인지 확인할 수도 없는데 여사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여성은 남편이 있는 존재로 보는 성별 고정관념이 전제된 호칭이다. 현장에서 무조건 나이 많은 여성을‘여사’로 호칭하는 관행이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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