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임용현의 모두를 위한 노동권 이야기 : 폭염기 노동자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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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530회 작성일 23-08-22 14:31본문
폭염기 ‘노동자 건강권’보다 ‘생산성’ 부르짖는 정부와 자본
올들어 폭염특보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유독 잦다. 그만큼 기후재난이 개인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사실을 정부 당국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행정안전부 명의로 발송되는 재난문자의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니 ‘논‧밭 작업, 건설현장 등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건강에 유의’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긴급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일손을 놓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아니, 무엇보다 이 노동자들이 처한 위급한 상황을 이 정부는 제대로 알기나 할까?
폭염 속 쓰러지는 노동자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실외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폭염’이 노동자들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올여름 무더위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전국을 엄습했다.
지난 6월 19일에는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쇼핑카트 및 주차관리 업무를 하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업무 중 쓰러졌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3℃에 달해 연이틀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상황이었고, 청년 노동자가 일하던 주차장은 외부 열기에 고스란히 노출된 공간(코스트코 주차장 1층은 실내에 해당하지만, 매장 입구를 제외한 3면이 개방된 구조였음)이었다. 이 노동자는 매시간 200개에 달하는 쇼핑카트를 모아 매장 입구로 옮기는 역할을 도맡아 수행하다가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 증세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내 숨졌다. 사망 당시 청년 노동자가 차고 있던 만보기에는 토요일 26㎞, 일요일 22㎞, 사망 당일(월요일)에는 17㎞를 걸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같은 달 28일에는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열차 내부 청소 업무 도중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망한 노동자가 청소 중이던 지하철은 운행을 종료하고 지상에 있는 차고지로 입고된 상태였는데, 이날 낮 최고기온은 30℃를 기록해 열차 내부까지 뜨겁게 달궈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역대급 무더위에 쓰러지는 노동자들이 도처에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한가롭다 못해 한심할 지경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0년)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등 온열질환 재해자는 총 156명이 발생했고 이 중 26명이 사망(16.6%)했다. 지난 3년간(2020~2022년) 온열질환 사망자 수도 △2020년 2명 △2021년 3명 △2022년 4명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재은폐와 미신고가 만연한 현장 실태를 생각하면 이 같은 사업장 내 온열질환 발생현황조차도 과소 추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8월부터 개정‧시행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6조(휴식 등)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여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한 휴식 등의 조치’를 의무화했다. 기존 규칙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만 이러한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해 왔는데, 개정된 규칙은 옥외장소만이 아니라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 대해서도 관련 조치를 의무화한 것이다. 그리고 사업주가 이를 어길 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강제성 없는 정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
문제는 ‘적절한 휴식’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법적 규율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6월1일 배포한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에 따르면, 폭염주의보 발령 시 매시간 10분, 폭염경보 발령 시 매시간 15분씩 휴식을 제공하도록 사업주에게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처분이다. 솜방망이 처벌조차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업주는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반면 노동자의 처지는 사업주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정해진 과업이나 물량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고용이나 임금과 관련해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폭염기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업주가 과업 또는 물량의 신속한 처리를 종용한다면 이를 뿌리치고 쉴 수 있는 노동자는 현실에서 흔치 않을 것이다. 코스트코에서,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건설업의 경우 최근 3년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재 인정이 가장 많은 업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7월 11일부터 8월 7일까지 전국 31개 건설현장에서 221건의 체감온도를 측정한 결과 기상청 발표 체감온도와 평균 6.2℃의 차이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조사기간 각 지역에서 기상청이 발표한 평균 체감온도는 32.4℃인 반면, 건설현장의 평균 체감온도는 38.6℃를 기록했다. 특히 햇볕에 달궈진 철근이나 콘크리트 양생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화열, 복사열은 건설 현장의 온습도를 높이는 주원인이라고 한다. 건설노동자들은 철로 된 자재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고, 햇볕을 가릴 지붕이나 차양막은 없는 건설 현장이 “불지옥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체감온도가 35℃를 넘으면 옥외작업을 중지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권고가 있다 한들, 노동자의 건강권은 아랑곳 않고 작업을 강행하는 현장이 부지기수다. 건설사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공사기간 단축에만 혈안이 된 까닭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쿠팡 사측에 폭염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파업을 벌인 8월 1일, 오전 10시 기준 인천4센터 4층의 기온이 34.2℃, 체감온도는 35℃에 달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매시간 15분의 휴식이 주어져야 했지만, 쿠팡이 이날 노동자들에게 부여한 휴게시간은 하루 1회, 고작 20분에 그쳤다. 쿠팡이 노동자들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는 ‘빨리빨리 속도전’을 강요하는 여느 건설사들 문제와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노동자 건강권보다 작업 속도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실효성 없는 대책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만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 39조(보건조치)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온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업주가 해야 할 구체적 조치를 담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558조 1호)은 ‘고열 작업’에 대해 “열에 의해 노동자에게 열경련·열탈진 또는 열사병 등의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는 더운 온도”라고 규정하면서도, 이 정의규정에 해당하는 작업으로 광물‧금속‧유리‧도기 등의 원재료를 용해하거나 가열, 성형하는 특정 업무에만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준은 앞서 열거한 마트 주차장이나 물류센터 같은 실내 작업장은 물론이고 건설 현장이나 청소 작업 등 야외 작업장 또한 고열 작업장에 포함하지 않는다.
녹아내리는 작업장
푹푹 찌는 날씨는 야외작업이 다반사인 민주연합노조 소속 조합원들에게도 가혹하기는 매한가지다. 가령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나 도로공사 소속 현장지원직 업무를 수행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한다. 이들 역시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이지만 정부 가이드라인은 거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 범주에 두지도, 예방 조치를 강화하지도 않는다.
요즘 같은 폭염기에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아스팔트 위를 걷다 보면 신발 밑창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다. 실제로 아스팔트가 녹기 시작하는 온도는 32~34℃로 폭염이 발생하면 충분히 녹아내릴 수 있다. 더욱이 아스팔트는 비교적 어두운 색상을 띠고 있는데다가 밀도가 높기 때문에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흡수해 복사열을 내뿜게 된다. 그로 인해 폭염기 아스팔트 도로의 표면온도는 최대 52~53℃까지 치솟아 주변 기온보다 17℃가량 높아진다고 한다.
한편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아스팔트의 주재료인 타르, 중금속 등 각종 유해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 미국 예일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뜨거운 여름철 맑은 날씨엔 자동차 배기가스보다 더 많은 대기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 아니다. 차도를 내달리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도 노동자들의 건강을 일상적으로 위협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폭염 일수는 장마 영향으로 6일에 그쳤지만, 장마철이 끝난 이달부터는 찜통더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늘 한 폭 없는 뙤약볕 아래 쉴 새 없이 옮겨다니며 일하는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 현장지원직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유명무실해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폭염기 위험작업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이유다. 온열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고온 및 고열의 ‘모든 작업환경’에서 노동자의 휴게권과 작업중지권이 두루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