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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저출생 위기가 아니라 돌봄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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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411회 작성일 24-08-0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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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인권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급격한 인구감소로 대한민국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고대 스파르타의 역사까지 언급하며 <인구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일부에서는 자녀가 부채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며 서민들을 탓하기까지 해 여성단체들과 청년들의 비판이 쇄도했다. 


돌봄정책은 뒤로 가면서 닥치고 애 낳으라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동안 숱한 정부가 내놓은 방향에서 다르지 않다.  출산과 양육 등 정부의 돌봄정책은 뒤로 가면서 양육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공허하고 신뢰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임기 여성들을 출산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어 비난 여론은 거셌다. 

정부 정책은 현재의 가구 구성에도 맞지 않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혼 가구가 늘어가고 있는 현실은 단선적으로 그려졌던 ‘졸업→취업→결혼→출산’의 생애사가 현실의 삶과 멀다. 결혼과 자녀 출산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삶은 이제 현실이 아니다. 디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결혼해서 애나 낳으라니 설득되기 어려운 주장을 정부가 펴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있는 돌봄지원조차 이성애중심 가족지원에 한정하고 있어 문제적이다. 1인 가구에 걸맞는 돌봄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저출생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는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를 3대 핵심 분야로 보며 지원하겠다며, 육아휴직 월급여 상한도 150만원에서 최대 250만으로 올리고 출산휴가 신청과 함께 육아휴직도 ‘통합신청’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했다. “좋은 일자리 창출, 과도한 경쟁완화를 위한 공교육 내실화, 지방균형발전 등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돈 몇 만 원 올린다고 사람들이 출산을 결정하겠는가. 성별 임금격차, 돌봄육아, 여성의 고용단절 등 구조적인 문제가 그대로인데, 삶이 팍팍해서 이성애 가정을 꾸린 사람들조차 출산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로 여성을 불안정노동으로 몰아넣어

사실 그동안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로 여성들은 초단시간 직종에 배치하여 불안정노동에 시달리게 했다. 2022년 8월 기준, 남성노동자 중 시간제 노동자는 9.4%, 여성노동자 중 시간제 노동자는 26.2%인데 점점 증가추세다.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동반한다. 실제 2024년 최저임금은 201만 원이지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163만 원이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2024년 4월 23일 경총이 발표한 고용시장의 주요 특징은 ‘△단시간 노동자 비중 확대 △여성 취업자 약진 △청년 고용 부진’으로 열악한 여성, 청년의 현실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지금보다 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정책이니 누가 믿겠는가.  


주거는 또 어떤가. 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높은 주거비용으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집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값을 올리고 부동산 투기를 올리는 정책만 낸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다주택자들에게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다주택조차들, 집을 구매할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집을 투기의 대상임을 노골화했다. 


누구나 적절한 공간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주거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가재원을 투여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저렴한 주거도 신혼부부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살 곳을 찾다 전세사기를 당하게 된다. 심지어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형식적이다. 


양육은 어떤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4년 3월에 발간한 ‘젠더 관점의 사회적 돌봄 재편방안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가구 여성의 하루 평균 돌봄 시간은 11.69시간인 반면, 남성은 4.71시간이다. 여성의 독박 돌봄은 여전한 것이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임금노동시간과 무급돌봄노동시간을 합한 1일 총 노동시간은 여성이 484.4분, 남성은 468분으로 더 많다. 여성들은 직장과 가내 돌봄으로 과로에 시달린다. 


기혼여성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비혼의 가족돌봄도 큰 문제다. 정부가 조사한 바에 따라도 가족돌봄청(소)년은 1주일 평균 21.6시간을 돌봄에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삶의 만족도가 낮고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워한다. 돌봄공공성이 없어 집에 있는 노인이나 장애인 가족을 오롯이 개인이 다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사회서비스원 폐지와 돌봄의 시장화


고령화사회로 가는 현실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돌봄공공성이다.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만 돌봄을 받아서는 안된다. 돌봄은 권리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지방정부인 서울시는 그나마 공공돌봄을 작게나마 수행하기 위해 2019년 3월 출범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인 ‘서울사회서비스원’(서사원)을 폐지했다. 국민의 힘이 서울시의회를 다수가 되자 다수의 힘으로 4월 26일 폐지안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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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에 반대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모습>


그동안 서사원은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돌봄노동자들을 월급제로 채용해 고용 안정성을 높였고, 중증장애인 등에 대한 공공 돌봄을 제공해왔다. 그런데 이를 서울시의회가 일방적으로 없앴다. 시민들은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돌봄에 접근할 수 있고, 돌봄노동자들은 불안정고용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서울시는 폐지 이후의 공백에 대한 대책도 거의 없다. 이용자를 인근 방문요양기관 중 최우수(A등급) 이상 기관에 우선 연계하고, 고용노동부와 서사원 소속 노동자의 고용 문제를 협의하고 구직 수요가 있는 기관들 정보도 안내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어디 그뿐인가. 돌봄이 필요한 가정을 위해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이주가사노동자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시범사업을 만 24~38세의 필리핀 국적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100명 정도를 비전문취업비자(E-9)로 모으겠다고 한다. 결국 고령화사회에서 돌봄의 가치가 더 중요해짐에도 돌봄노동을 전체적으로 평가절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노동기준에도 어긋난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의 189호 협약과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비공식부문 가사근로자 보호를 위한 권고 등을 하며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라고 했다. 그 결과 2021년 6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 제정했고 조금이나마 가사돌봄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했다. 


물론 최저임금법에는 여전히 ‘가사사용인’이란 표현으로 최저임금 적용제외대상이다. 실제 2022년 6월부터 시행된 가사근로법에서 말한 ‘가사근로자’와 최저임금법의 ‘가사사용인’은 다른 직종이 아니다. 다만 가사근로자법에 가사근로자라고 함으로써 최저임금 적용을 받게 하려 한 것이다.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인증기관)과 가사근로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최저임금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사노동자 비율은 적다.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밖에 있다. 


그런데 이를 이주가사노동자제도를 도입하면서 ‘가사사용인’이라고 규정해 최저임금을 안주려고 한다. 이는 기존 가사돌봄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게다가 외국인 유학생(D-2 비자)의 가사노동시장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발상은 이주민청년들의 노동을 착취하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결국 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확산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저출생의 위기가 아니라 돌봄의 위기


앞서도 말했듯이 고령화사회는 돌봄을 필요로 한다. 돌봄공공성이 없으면 성별, 나이, 경제력에 따른 접근권의 차이로 인한 부담이 커지고 돌봄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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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8 세계여성의 날, 가사돌봄 사회화를 촉구구하는 여성인권단체의 기자회견>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 위기가 점점 심해지는 시대에 인구가 많아야 한다는 주장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일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22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지난 10년간,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한 CO2 배출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1인당 GDP와 인구 증가였다”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인구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왜일까. 국가의 인구통제는 자본의 요구다. 유휴노동력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낮추고 노동자들을 통제하려는 것과 전쟁에서 필요한 총알받이의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인구위기 담론은 여성들을 출산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결국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 낙태죄가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여성에게 재생산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고 있다.


노인, 여성, 청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모두가 노후를 걱정하지 않도록 돌봄공공성을 높이라고 주장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