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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혜진의 세상 속 노동조합, 노동조합 속 세상 :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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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253회 작성일 21-08-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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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7월 1일부터 전면 파업을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입구를 천막으로 둘러치고 그 안에 철조망도 쳤다. 담이 낮은 곳은 합판으로 담장을 올렸다. 아주 좁은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하다가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그 쪽으로 한 발 들어가자 그곳을 막고 있던 정규직이 “내 땅에서 나가”라고 이야기했다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그 땅은 당연히 시민들 모두의 것인데도, 그곳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비정규직을 가로막는 정규직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은 노동자이지만 기업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구나 생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다. 아마도 조합원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고 있으니, 자신들을 민주노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조’라고 부를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은 민주성, 자주성, 그리고 연대성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가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고객센터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기에 연대성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주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은 어용노조가 아니고, 정규직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그런데도 ‘자주성’이 없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주성’은 어용노조가 아니라고 해서 저절로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70년 유신체제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더욱 심각하게 통제했다. 그 때 원풍모방과 동일방직 노동자들은 어용노조를 바꾸어 민주화하고, 콘트롤데이타나 반도상사, YH무역에서도 노조를 세우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그런 노조를 어용노조와 다르다는 의미에서 ‘민주노조’라고 불렀다.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켜왔던 선배 노동자들은 ‘자주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탄압을 당하더라도 회사의 손발이 되어 노동자들을 통제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의지에 기초하여 싸우겠다는 것이 ‘민주노조’의 중요한 의지였다. 그래서 민주성과 자주성은 분리될 수 없는 가치였다.  

 

기업과 정부는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하고 기업에 종속시키려고 노력한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인식을 계속 퍼뜨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학교와 언론에서도 기업의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게 만든다. 삼성그룹 이재용의 사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76%의 국민이 사면에 동의한다고 한다. 이것은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동의한다는 뜻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노동조합 파괴를 사주하는 자본가의 사면에 노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기업의 이윤이 중요하며, 그 중심에 기업의 총수가 있다는 인식을 노동자들도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기업 중심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에게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다.

 

자주성을 잃으면 노동자들과 노조는 기업의 흥망성쇠에 연연하게 된다. 기업의 생존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향해가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로 통제하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은 기업별 노조체계를 강제하고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만들어서 상급단체의 활동을 가로막고, 다른 노조와 연대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문재인정부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서 해고자, 상급단체 활동가가 사업장 단위에서 활동하는 것을 제약하여 기업단위로 노조 활동을 국한하려고 한다. 기업별 임단협을 넘어서는 의제로 파업투쟁하는 것을 불법화하기도 한다. 노조가 기업의 틀에서 벗어나야 자주적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민주노조의 ‘자주성’이 쉽게 훼손되고, ‘자주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을 목도한다. 특히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지 아닌지보다 얼마나 더 많은 이익을 조합원에게 가져다주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곤 한다. 기업과 싸우기보다 다른 노조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노동자들이 위계화되어 있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노조를 만드는 경우도 많지 않다. 따라서 ‘자기 조합원의 이익’만을 생각하게 되면 기업의 갈라치기에 노조가 동의하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노조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민주노조운동에 ‘자주성’은 어떤 의미일까?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협소한 이해관계에 얽매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누구에게 이로운가? 예를 들어 지자체가 생활폐기물 수집ㆍ운반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면 지자체는 비용절감을 하고 위탁업체는 중간착취를 하니 이롭겠지만, 비정규직은 권리를 훼손당하고 주민들도 공공성에 침해를 받게 된다. 자신의 협소한 이해관계에 매달려, 이 결정이 누구에게 이로운가를 고민하지 않는 노조는 자주성을 갖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노조는 기업으로부터 자주적이기 어렵다.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되려면 무엇이 노동자 전체를 위하는 길인지 부단히 생각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노조의 선택이 노동자 전체에게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기업을 이롭게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동료 노동자들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더 생각하고, 노동조합이 그렇게 하기를 원할 때에도 노동조합의 임원이나 집행부들은 조합원들을 설득하면서 노동조합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 집단적인 힘을 통해 사회를 바꾸기 위한 꿈이 희미해져가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노동조합을 통해서 변화를 만드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연대성 못지 않게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