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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너와 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권리
왜 장애인만 버리고, 비장애인만 버스에 태워 이동하려고 합니까?
 
민주연합노조

  

 326일 오송역 앞 버스정류장, 수명의 장애인들이 도로를 가로막더니 한 여성장애인이 버스 밑으로 들어갔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겨우 버스 밑으로 들어간 그의 외침은 의외로 소박했다. ‘버스를 타고 싶다였다. 절박한 투쟁의 요구가 겨우 버스 타기라니!

 

 “왜 장애인만 버리고, 비장애인만 버스에 태워 이동하려고 합니까? 왜 장애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오송역에서 세종시를 거쳐 대전역까지 운행하는 B1버스에는 저상버스가 없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버스를 탈 수가 없다. 정부종합청사가 이전한 세종시로 가는 저상버스 부재는 단지 장애인의 이동의 자유 박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종시에 있는 보건복지부나 고용노동부, 국토부를 찾아가 정책을 전달하러 가기 쉬워야 한다. 매번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는 없다. 저상버스를 운영하지 않음으로서 장애인들은 의견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권리까지 뺏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한지 벌써 20년째이지만 저상버스는 수도권이나 광역도시 정도에서 운행되는 수준이다. 휠체어이용 장애인도 탑승할 수 있도록 리프트 등을 장착한 고속버스가 20191028일부터 2020년까지 시범 운행한 적이 있지만 국토부는 더 이상의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기차가 있는 노선 몇 개만 운영한데다, 탑승 가능한 휠체어 모델이 적고, 휴게소 휴게시간의 부족이나 비장애인과 분리 탑승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 이용자가 적었다. 필요한 예산책정을 하지 않기에 발생한 문제다.

 

 권리는 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져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마다 장애인활동가들은 전철 철로나 도로를 점거하며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우리도 전철을 타고 싶다며 싸운다. 일부 시민들은 교통체증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가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냐, 성을 내거나 이기적이라며 호통을 치곤 한다. 정부에 가서 항의하라며 장애인비하를 서슴지 않기도 있다. 힘을 보여야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기에 점거투쟁을 하는 것임을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내 앞에 놓인 당장의 불편함을 더 크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장애인들은 비난하는 이들은 과연 한정된 재원을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동의할까. 이런 상황을 보면 자유란 나로부터 혹은 너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권리란 우리 사이의 관계로서 혹은 사이에서 발생한다. 각자의 행동이 권리로서 빛을 발하려면 평등한 관계일 때 가능하다. 여전히 비장애인들이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유지하려 할 때 권리는 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권리는 실현되기 어렵다.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이동할 권리를 주장하는데, 비장애인들이 나몰라라 하거나 또는 방해할 때 장애인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일은 요원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평등한 인권 보장이라는 지향에 동의하지 않으면 권리는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인권은 파이 나눠먹기와 다르다.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권리 박탈이 용인되는 순간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권리 박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억압해서 얻은 안락함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실제 2000년 초에 이루어진 장애인이동권투쟁으로 전철이나 빌딩에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이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이동약자라 불리는 노인, 아동, 임신부들도 편하게 이동하게 했다. 한 사회의 인권수준은 상대의 인권이 얼마나 보장되느냐에 따라 함께 올라가는 것,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각자도생과 경쟁을 삶의 원리이자 사회 작동의 원리로 삼으라고 주입한다. 각자도생은 권리의 양극화, 인권의 후퇴를 가져올 뿐이다. 서로의 권리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서로의 권리를 낮추려 한다. 대표적인 것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한 입장이다. 원칙적으로는 비정규직이라서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반대하면서, 본인이 일하는 사업장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에는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정규직 전환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오인한다. 심한 경우에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드는 비용이면 정규직의 임금을 인상시켜달라고도 한다.

 

 2019년과 2020년 한국도로공사에서 해고된 톨게이트수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대로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투쟁을 할 때도 기사에 비슷한 댓글이 달린 적이 있다. 공공기관인 도로공사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이 되는 거냐고 비난을 했다. 따져보면 회사가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그동안 이윤을 축적한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대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음에도 시험만을 유일 기준으로 삼는 입장이 넘쳤다.

 

 애초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차별하는 비정규직 제도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언제든 회사의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한, 현재 정규직인 사람들에게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이라는 칼날이 날아갈 수 있다. 비정규직의 권리를 정규직이 함께 만들어가려 하지 않는 한 평등하고 안정된 노동권보장은 불가능하다. 권리는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질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야 지켜질 수 있다. 정부와 기업에게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 장애인활동가가 외쳤던 말을 이렇게 바꾸어 정부에게 전해본다.

 

 “비정규직을 버리고 정규직만 버스(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에 태우려 합니까. 왜 비정규직의 이야기는 듣지 않습니까?”

 

 

 

 

** 교육선전실에서는 2021년 사업계획으로 외부 명사의 정기기고를 특별기획연재 형태로 꾸준히 게시하고자 합니다. 노동조합과 교섭, 투쟁 등 우리 얘기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의제들에 대해 사색하고 토론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기사입력: 2021/04/01 [12:59]  최종편집: ⓒ kdfun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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